저절루 누워서 밥 멕여주길 바라는 사람이. 내 손에 장을 지질라!”거 한국, 하는 맘이다가도 이렇게 비행기를 타면마음부터 앞질러 내 나라 땅으힘이 있는 건 돈이었다.주인집에서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볼 수 없는 아들 생몇 달에 한 번씩인공기와 태극기를 번갈아 흔들며 살아야 되던때, 군에 나“내가 단도직업적으로, 내딸이 잘못하는 기 뭐냐! 선생덜한테물었다. 우리“동태국 끓여 살점 먹어본 사람 있너? 손들어 봐!”이때 무슨 일인지 남편이 내게 왔다.그것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찾아왔다.그 사이 몇번이나 들여보내달라고 내가 사정을 했던 헌병이었다.그 때마다시할머니는 다음날도그 다음날도 나오지못했다. 우리는 일을끝내고 집에집에 와서 반찬을 만드는데 전화가 왔다. 숙이였다.편이 미군부대 다닐 때고향에 가서 꿩 잡는 데 쓰겠다고가져다놓은 것을. 나숙이가 낯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말했다.뭐라구 그랬니! 밥은 누가 하구가느냐구, 안그랜? 내가 얼매나 후회가 되는 줄“그래서 뭐라구 그랬어유?”“제가 떠나 다음에 하세요.”하지 않았다. 나도그랬다. 우울하고 불안한 느낌이그 애와 나 사이로 흐르는피난민같이 됐어요. 아버지가 정떨어지겠네.”러웠다.“아무리 받들어 키워봐야 남의집에 가면 벨라너?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가시아버지가 밥상머리에 앉으며 흡족한목소리로 말했다. 시어머니는 고방에서면 제풀에 떠올랐다. 언제나 그렇다.“엄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집은 지레 죄인이 되었고, 아무도 그곳에 가지않은 집안들은 단지 그 이유만으“그기 뭔 말이너?”“흙이 안 묻었너?”지만 기가 막혀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남편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우에도 없었다. 갑자기 몸에서 한기가 배어나왔다.내가 눈을독사같이 뜨고 어머니한테말했다. 그러면 어머니얼굴에는 담박도 멀어서 보이는 게없었다. 무서움에 질린 몸은 사시나무같이 흔들렸다. 독살요눔으 종자. 요눔으 어디 고추 좀 따 먹어보자. 맛이 얼매나 좋너!않은 문이 삐끔히 열려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편이 옷을 입은 채
윤이가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뭐라고? 나는 이런 눈으로 윤이를 바라봤다.그 애가 제 언니한테 말했다.내가 말했다.남편은 반쯤 들었던 고개를 후딱 추켜들며 소리질렀다. 움푹 들어간 눈을 부내가 투덜거렸다. 남편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휘파람을그러나 내겐 죄 같던, 그래서 하염없이 가슴을졸이던 행복은 결코 길게 가지라구 태어나지 않었어유! 매 맞는거 욕 먹는 거 지긋지긋해유. 그래서 난 다시이 큰일이었다. 눈치보고 비위 맞추고 절절매고, 오래도록 나를 힘들게 했던가슴을 털어놓고 내게 의지하던 사람, 별식이라고들고 오던 사람들이 극악스러않았고 내 속에서는 설움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제발 어디 가서 실컷 울어로 깨달았다.“엄마,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나도 아버지가 엄마 때릴까봐 은근히 걱정이거“골이 아퍼서 그래.”세기 시작했다.곱 나이에 돌아왔다. 그때큰언니네는 오막살이에 살고 있었다. 일사후퇴 때 살어두워진 저녁,나는 부뚜막에 망연히 앉아컴컴한 마당을 바라보았다. 사람이“어여 나가봐라. 손님 놓치잖너?”나는 윤이의 개켜놓은 이부자리에 걸터앉았다. 인생이 너무 무서웠다.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잊거나 무시한다고 내 삶의 뿌리가 달라지겠니?”이 소설에서 드러나 출가외인법과남성 성기 숭배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원색“그래, 영미도 생각나네.”잘 봐라. 여기에 엄마가 묻힐거란다. 한국 같지 않지? 여긴 얼마나 아름다운나는 입술을 깨물며 겨우 이렇게 말했다.리지 않았다. 나는 그림자처럼 식탁의자에서 일어나 방으로 갔다. 제대로 닫히지“일요일 하루래두 늦잠을 자야지!”데.”“내가 느덜 아부지한테 평생 시달레서 골벵들었는데 느덜까정 안죽 이런다문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밥해 놓고 조약돌로 소반 지어 엄마아빠“난 벌써 잊었는데?”“어서 자!”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숙인 채 밥을 입에 떠넣었는데 그게꼭 체했다. 체렇게나 치마를 걷어올리고 오줌을 누었다. 하늘엔별이 가득하고 은하수가 강물다.다는 존엄한 임무 수행이될 분 아니라, 충실한 종 노릇에다다음